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KNCC) 전광표 회장과 총무 권오성 목사는 20일 오후 기독교감리회 총무 이원재 목사 등 기독교교단협의회 대표들과 함께 청와대를 방문해 사립학교법 중 개방형 이사제 조항의 재개정을 요구하는 의견서를 전달했다. 충격적이다.
이들은 ‘사립학교법에 관한 우리의 입장’을 통해 “개정 사학법의 입법 취지에는 공감하지만 개방형 이사 선임문제를 담은 조항은 기존 이사회 전체를 불신하는 내용으로 구성돼 있어 다시 개정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또 개신교 목회자 30여 명은 ‘개방형 이사제’ 재개정을 요구하며 이날 오전 서울 종로구 연지동 한국교회100주년기념관에서 집단 삭발했다.
이야말로 순교가 아닐 수 없다. 그것은 순교한다는 마음으로 개정 사학법에 반대하고 나섰기 때문이다. 단지 사학법 때문에 머리를 깎은 게 아니다. ‘신앙과 선교’라는 건학이념을 개정 사학법으로는 실천할 수 없기 때문에 깎은 것이다. 목회자가 머리를 자르는 것은 순교의 뜻이다.
순교자는 죽지만 순교는 결국 승리를 이끄는 경우가 많다. 우리 역사상 첫 순교자로 기록된 신라 승려 이차돈의 불교 봉행 주장은 신라가 불교를 국교(國敎)로 삼는 데 크게 기여했다. 조선 말기 김대건 신부에 이어 대원군 시절에 천주교 신자 8000여 명의 순교는 오늘날 교세 확산의 큰 밑거름이 됐다. 일제 강점기에 주기철 목사의 신사 참배 거부 및 순교는 기독교를 통해 민주주의의 선구적 역할을 했다.
사학의 개방형 이사제를 둘러싼 기독교계의 삭발 투쟁은 극단적 분노의 표현인 것이다. 사랑과 용서를 무엇보다 중시하는 그들이 오죽하면 사학법을 ‘사탄의 법’으로 생각하고 있을까.
사학법을 그렇게 생각하고 있는 이유는 무엇인가? 학교운영위원회, 대학평의회가 추천하는 이사(理事)는 사학의 건학이념, 신앙을 모를 수 있으며, 좌경사상을 가지고 있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럴 경우 건학이념에 엄청난 지장과 방해가 올 것이 명약관화(明若觀火)한 사실이다.
한국사학법인연합회는 사학법이 재개정되지 않으면 학교 폐쇄도 불사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교육자들이 학교 폐쇄를 언급하는 것은 바람직하다고 할 수 없다. 1년 전 사학단체들이 낸 헌법소원에 대해 헌법재판소는 6개월 안에 결론을 내려야함에도 지난주 겨우 첫 공개변론을 열었다. 따라서 사학은 고립무원이다.
열린우리당은 재개정안을 내놨으나 위헌적 핵심 조항인 개방형 이사제는 손대지 않았다. 전교조와 친전교조 시민단체 소속 개방형 이사가 분규를 일으키고, 정부가 학내 분규를 이유로 파견한 임시이사가 사학 경영권을 뺏는 것은 손바닥 뒤집기보다 쉬운 일이다. 결국 분규 사학은 전교조 사학이 돼 버리지 않을가 싶다.
사립학교란 원래 설립자 나름의 종교적, 교육적 이념을 실현하려고 귀한 재산을 내놓아 건립한 것이다. 그런데 정부는 재개정 논의가 일고 있는 개정 사학법을 밀어붙여 사학의 혼란을 키우고 있다.
정부 여당은 사학의 자율성을 침해하고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의 헌법정신을 훼손하는 사학법을 즉각 재개정해야 한다. 직업선택의 자유 등 4가지 정도의 위헌이 나올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민주주의(民主主義)의 근간은 ‘법에 의한 지배’라 하지만 자율화에 역행하는 규제 일변도의 법령은 자생적 질서의 진화 대신에 렌트시커(rent-seeker)의 활동무대만 확대되는 속성이 있다.
정부는 ‘사학 비리 척결’ 운운하지만 사학 비리는 구실에 불과하다. 2000여 곳의 사학 중 비리 사학은 30여 곳뿐이다. 개정 사학법이 아니더라도 비리 사학에는 감사반도 보내고, 형사 고발도 하고, 임시이사를 파견할 수도 있다고 본다.
사학법 재개정이 받아들여지지 않을 때 기독교 사학에 심각한 문제가 발생할 것이며, 거기에 따른 교회의 투쟁은 일제 강점기보다 훨씬 더할 것이다. 선진국은 교육 경쟁력을 높이기 위해 앞 다퉈 교육 규제를 폐지하고 지원을 늘리고 있는데 우리는 왜 정반대인가.
정부 여당은 사학이 건학이념을 마음껏 구현하도록 자율성을 신장시키는 데 전심전력해야 할 것이다. 사학을 살려야 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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