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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교육칼럼>우암과 리병재의 동행 |
2013년01월17일(Thu) |
| 안용호 논설위원(전 광주시교육청 장학담당장학관) |
우암 송시열이 제주도로 귀양 갈 때 손재 박광일이 옹위하고 가는데 함평 나산에 사는, 벼슬이 낮은 진사인 리병재 안여해가 재종질 안만웅과 함께 하는 것은 의외의 일이었다.
비가 억수같이 쏟아지므로 일행은 가다가 강진 만덕사에서 쉬면서 시를 짓고 유학을 강론하게 된다. 역시 노학자다운, 귀양길의 진지한 모습이었다. 여기서 안여해가 우암으로부터 차운을 받아 지은 시가 당일 함께 했던 사림들의 분위기를 대변하는 것 같다.
“선생이 남으로 귀양감에 도 여전하여/ 만리의 푸른 물결 평탄한 길로 여기네/ 하늘이 응당 사직을 붙들게 하리니/ 대궐에서 은혜로운 윤음 내리길 기다리네.”
이 안여해의 시에는 송시열의 도가 결코 없어지지 않으며, 그리고 임금님의 어명에 의해 곧 귀양이 풀릴 것이라는 기대가 묻어난다.
이어지는 경학을 강론하고 토론함에, 천리와 인륜, 이와 기의 의미에 대하여 의리의 오묘함을 풀어 담변하면 83세인 우암은 공의 말이 옳다고 감탄하기를 “어쩌면 이렇게 독실하게 공부했을고?”라고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평소 칭찬보다는 꾸짖음에 익숙했던 우암이 감탄하여 칭찬한 것으로 보아 안여해의 학문 세계가 경지에 도달했음을 짐작케 한다.
이어서 우암은 ‘조심주일’이라는 네 글자를 크게 써 주고 공의 안질을 보고는 ‘리병재’ 세 글자를 써 주며 “잘 조섭하여 우리들의 두터운 바람에 부응하시게.” 하시며 격려와 기대를 나타내셨다.
안여해는 우암을 존경하고 사모하여 ‘동유록’을 지었다. 춘추대의를 가지고 ‘명동보력총요가’를 지었다. 또 지은 책으로 ‘논학제편’이 있다.
동유록을 지은 안여해에 대하여 창계 임영은 공을 칭찬하여 “오늘날의 안연이다.”라고 했으며, 장암 정호는 “안공의 따뜻한 풍모와 맑고 깨끗한 흉금은 근세에 찾아 보기 드물다.”라고 칭찬했다. 손재 박광일은 “안공의 순수한 기질은 맑은 물의 연꽃이요, 한 덩어리의 온화한 기운은 좌상을 따뜻하게 한다. 그러니 공을 안자라고 일컬은 것은 잘 형용한 것이다.”라고 극찬하였다.
수암 권상하, 농암 김창협, 지촌 이희조 등 여러 선생들이 동유록을 보고 모두 감개하여 눈물을 흘렸다고 한다. 그러나 불행히 단명하여 안연보다 겨우 3년을 더 살고 1691년 12월 15일에 돌아가셨다.
박광일이 행장을 짓고, 이재가 묘지를 지었다. 경종 임인년, 1722년에 경향 사림의 공의로 함평 나산에 사당을 건립하였다. 장암 정호 선생님이 인을 강의 한다는 의미의 ‘강인’, 동재를 ‘사사’, 서재를 ‘심락’이라 명명하고 큰 글씨로 썼으니, 이렇게 이름 붙인 것은 모두 ‘공을 안자라고 일컬은 뜻’에서 취한 것이었다.
그런데 지은 책이 모두 소실되고 없다가 만덕 창수록이 나왔고, 대제학 윤봉조가 지은 동유록의 서문이 포암집과 박광일의 문집 171권에서 최근 발견되어 번역됨으로써 내용을 미루어 짐작케 한다.
동유록이라는 제목은 왜 붙여졌을까? 서문은 여조겸이 동쪽으로 가서 정이천 선생을 뵌 일에 따른 것이라고 한다. 한나라 목민관 황패는 ‘아침에 도를 들으면 저녁에 죽어도 좋다’는 말을 남겼는데, 여해가 우암의 도를 듣는 것에 대해 황패의 생각을 바탕에 깔고, 여조겸에 비유한 것은 대단한 자부심까지 느껴지게 하는 대목이다.
서문에는 여해의 인품이 기록되어 있다. ‘공은 어린 나이부터 빼어나 고향과 나라에 소문이 나서, 사람들이 한나라의 선비 황헌에 견주어 칭찬했으니 공의 품은 뜻과 행실을 짐작할 수 있다.’ 또 ‘가슴 가득 뭔가 얻은 듯 충만한 느낌을 가졌다.’는 여해의 말을 예로 들면서 ‘목격도존’, 즉 ‘눈이 마주치는 곳에 도가 있다.’는 말로 한 번 보는 것만으로도 어떠해야 한다는 이치를 알았다는 뜻이니, 언어에서 벗어나 마음으로 통달하여 신묘한 깨달음으로 이치를 찾는 사람이다.’라고 하면서 다른 사람보다 특별하게 다르다고 평하였다.
아! 너무 너무 아름답다. 성리론과 경제사상 그리고 만덕사에서 예치로써 지치를 이루는 우암의 마지막 강론을 듣는 여해.
애석하다! 한나라의 선비 황헌에 비견되고 우리나라 안연이라고 칭송 받던 여해의 일찍 죽음. 오홍 육백을 자랑하는 나산 안문의 손실이며, 나라에는 불행한 일이다.
아! 안타깝다. 동유록의 소실이여. 새로운 유학의 물꼬를 텄을 것으로 예상되는 내용이 전하지 않아 아쉬움이 남는다.
금산에서 만덕사까지 험난한 귀양길에 우암을 배송하면서 도학을 들으려한 안여해 어른의 심정을 알 것 같다.[관리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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