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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은 시인과 노벨문학상 |
2010년10월19일(Tue) |
| 이준구<주필, 시인> |
노벨문학상의 유력 후보자로 항상 거론되는 고은 시인의 연작시 ‘만인보’를 주제로 한 대규모 조작공원이 그의 고향 전북 군산에 조성된다는 소식이다. 고무적 현상이다. 그것은 12일 군산시에 따르면 40억원을 들여 ‘만인보’ 작품에 깃들어 있는 민족의 다양한 얼굴 5,600여명의 모습을 조각으로 형상화하는 ‘만인보 조각공원’을 2012년까지 예술회관 내 4만4,000㎡ 부지에 조성할 계획이기 때문이다.
고은 선생이 집필한 시집 ‘만인보’는 1986년부터 2010년 4월까지 23년 동안 총 30권 3,800여편으로 구성된 한국문학사의 최대 연작시로 민족의 다양한 모습을 형상화한 것으로 유명하다.
조각공원 조성은 작년 7월 고은 시인이 참석한 가운데 열린 군산예술회관 기공식장에서 문동신 군산시장이 그의 문학적 가치를 지역발전에 연계시키자며 제안한 데서 비롯된 것이다. 우리는 이에 대해 만강의 사의를 표한다. 문학을 아는 문 시장의 선견지명을 높이 평가하지 않을 수 없는 까닭이다.
특히 시(市)는 만인보 조작공원을 고은 시인의 생전에 만들어 작품 하나하나를 검증받아 정확하게 이미지를 표현하고 ‘만인보’의 예술성을 관람자에게 정확히 전달하기 위해 공원설립을 서두르기로 했다.
김인생 문화체육과장은 “만인보 조각공원은 세계 최장 새만금 방조제에 이어 세계 최다 인물상이 군산에 세워진다는 의미가 있다”면서 “각종 예술공연과 전시공연 등을 통한 군산 시민의 문화욕구 충족은 물론이고 우리 고장이 낳은 세계적인 문호의 문학사적 예술성을 한곳에서 즐길 수 있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고은 시인은 1933년 8월 1일 군산시 미룡동 138번지(당시 옥구군 미면 미룡리 용둔부락)에서 태어났다.
고은 시인은 군산중을 수석으로 입학했으나 한국전쟁으로 학업을 중단하고 시(詩)를 습작하기 시작했고 전쟁 이후에는 군산북중에서 국어와 미술 교사로 재직하면서 거기서 작가의 꿈을 열심히 키웠다.
그런데 노벨문학상이 페루 소설가 마리오 바르가스 요사에게 수여되면서 우리 한국의 고은 시인이 상을 못 타게된 것에 대해 안타까움을 표하는 분들이 많다. 노벨문학상이 국력 신장에 비례하는 것도 아니고 올림픽에서 금메달 따는 것처럼 국가에서 집중 투자를 한다고 해서 반드시 결실을 얻는 것도 아님에도 많은 인사들이 고은 시인의 수상에 기대를 했던 것 같다.
고은 시인은 해외의 독자들에게 충분히 어필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었고, 민간 차원에서 그리고 정부 차원에서 우리의 작가들을 해외에 알리기 위한 꾸준한 노력이 있어왔기 때문이 아닌가 싶다.
하지만 우리는 고은 시인의 수상 좌절보다 대학생들이나 젊은이들이 시를 읽지 않는다는 게 더 큰 문제인 것이다. 시를 읽지 않는 나라의 시인이 어떻게 노벨문학상을 수상할 수 있을까? 그래도 우리 국민들은 소설과 수필은 열심히 읽는다고 본다. 지하철에서 이런 책들을 읽는 시민들을 발견하는 것은 어렵지 않다.
같은 문학이지만, 시는 소설 또는 수필보다 여백(餘白)의 미(美)가 있고 우리에게 적은 단어로 더 많은 상상력을 요구한다.
옛사람들은 시인들이 시를 통해 신성과 접할 수 있다고 믿었다. 하지만 세계화의 무한 경쟁시대를 살아가는 한글 세대는 여백을 즐길 여유도 신과 영원을 생각할 마음도 없고 다만 날마다 돈 버는 기계의 역할을 할 뿐이다. 이런 게 사람다운 삶의 생활인가 묻고 싶다.
세계 10위권의 경제 대국, 반만년의 유구한 역사를 가진 우리 민족에게 이제 노벨상이 평화상 하나에 그치고 있는 현실은 조금은 자존심 상할 일이기도 하다. 이웃 일본이 이번에 화학상까지 받은 걸 합하면 18개다. 노벨문학상도 두 사람이 수상한 바 있다.
우리 고은 시인이 수상자가 되지 못한 데 대해 원인 분석이 나왔다. 영어 번역의 수준을 높여야 한다는 지적이다. 번역되는 순간 고유의 한글이 갖는 시어(詩語)의 아름다움이 사라지기 때문이다. 따라서 노벨상위원회가 아시아에 인색하다는 말을 하는 사람도 있다. 옳은 말인지 모른다.
우선 우리 시인들은 어떻게 하면 독자가 시를 외면하지 않을까를 생각해야 한다. 아무리 시를 잘 쓰더라도 독자가 외면하면 무용지물이 되기 때문이다.
교과부 당국은 학생들이 우리 시를 많이 읽도록 권장해야 한다. 또 시·시조 짓기 백일장도 자주 열어야 한다. 시를 짓는 순간 학생들의 정서가 순화되는 까닭이다.
그런데 고은이란 시인은 빛고을 광주와 뗄 수 없는 관계를 가진 분이다. 그는 1980년 광주민주화운동이 터지자 5·18 내란음모죄와 계엄법 위반 등의 혐의를 뒤집어쓰고 육군 교도소에서 옥살이를 해야 했다.
그는 감옥 안에서 광주 항쟁 소식을 어렴풋이 들었고, 그런 상황을 견디는 구상으로 ‘만인보’란 시를 쓰겠다고 결심했다. ‘만인보’를 주제로 한 첫 시집이 나온 것은 그로부터 6년 뒤인 1986년이었다.
2010년 그는 30권의 ‘만인보’ 연작을 완간했다. 수천 수만의 역사 속 인물, 그가 스치며 만난 사람, 글 속에서 만난 사람, 정치인이나 평범한 시민까지를 시집 속에 담았다.
이는 5천년 대한민국 역사를 사람 중심으로 풀은 것이다. 21세기 ‘사기열전(史記 列傳)’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얼마나 훌륭한 작품인가? 주옥(珠玉)과 같은 명작이다. 광주비엔날레 주제어로도 ‘만인보’를 쓰고 있다.
광주비엔날레, 광주민주화운동 등 고은 시인의 관계가 이처럼 물 흐르듯이 이어져 있다. 그는 우리 빛고을 광주시민에게 또 대한민국에 소중한 시인이다. 그가 존재한다는 것만으로도 우리에겐 위안이 된다.
우리는 대한민국에 수천의 시인과, 살아 숨쉬는 수천 수만의 시가 종이 위에 춤추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자랑스럽지 않은가.[관리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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