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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구상의 재앙 인간이 만든다 |
2010년09월09일(Thu) |
| 나경택<수석논설위원, (칭찬합시다운동중앙회 회장)> |
더위는 남을 배려하는 마음을 잃게 한다. 헨리 폰더가 주연한 영화 ‘12명의 성난 사람들’은 1957년 찜통더위에 갇힌 미국 배심원을 이야기하다 선풍기가 고장난 법원에 배심원 열두 명이 모여 아버지를 살해한 소년 사건을 다룬다. 더위에 짜증 난 배심원 대다수는 소년에게 사형판결을 내리고 빨리 집에 돌아가려고 한다. 소년이 아버지에게 매를 맞으며 불우하게 자란 처지는 무시된다. 다행히 한 배심원이 나머지를 설득, 소년의 운명은 무죄로 기운다.
다산 정약용은 더위에 마음의 평정을 잃지 않는 피서법을 소개했다. ‘깨끗한 대나무 돗자리에서 바둑두기, 소나무 단에서 활쏘기, 빈 누각에서 투호놀이, 느티나무 그늘에서 그네뛰기, 서쪽 연못에서 연꽃 구경, 동쪽 숲에서 매미소리 듣기, 달 밝은 밤 발 씻기.’ 현대인이 체험하기 힘든 피서법들이지만, 그중에는 ‘비 오는 날 시 짓기’도 있다.
김지하의 시 ‘추사’는 그래서 나왔을까. 추사 김정희가 겨울철 소나무를 그린 ‘세한도’를 보며 더위를 달랜다. ‘내 시간의 저 위쪽/ 추사가 살아 있었다는/ 그 일 하나만으로도/ 37도의 이 무더위가/ 아무렇지도 않다/ 추사/ 가을의 역사.’
올여름 러시아에선 1000년 만에 최악의 폭염으로 삼림 17만4000㏊가 불탔다. 산불로 인한 스모그가 덮친 모스크바에서는 하루 평균 사망자가 평소 두 배인 700명을 기록했다. 일본에서는 5월 이래 더위 먹어 숨진 사람이 300명을 넘어섰다. 우리나라도 전국 낮 기온이 30도를 웃도는 폭염에 갇혔다. 1930년대 김유정 소설 ‘땡볕’은 중복 더위를 가리켜 ‘쇠뿔도 녹이려는 뜨거운 땡볕’이라고 묘사했는데 이젠 삼복이 따로 없다. 서울에 폭염주의보가 내리자 국방부는 보초 서는 헌병들에게 선글라스 착용을 허락했다. 챙이 없는 헬멧을 쓰고 부동자세를 지켜야 하는 헌병의 시력을 보호하고 피로도를 낮추려는 조치다.
포유동물인 인간은 본디 고온에 약한 존재다. 추우면 체온 유지를 위해 몸 안에서 열을 만들어내고 지방층에서 온도를 보관해준다. 더우면 땀을 흘리고 혈관을 팽창시켜 열을 발산시키는 체온 자동조절장치가 가동된다. 연일 폭염 속에서 자동조절장치마저 작동을 멈춘 듯 가을이 서둘러 와주기를 간절히 바랄 뿐이다.
더위의 천적은 자연에 있다. 바람과 흙과 물과 불의 네 가지 원소 말이다. 물은 탁족과 유두를 흙은 모래껍질과 동굴을 생각하면 되겠다. 불은 김치찌개든 사우나든 ‘이열치열’이다. 그러나 역시 한 줄기 바람이다. 불지 않으면, 부치면 된다. 부채 말이다. 단선과 접선으로 나뉘는데, 대표적인 접선이 합죽선이다. 접었다 펴는 부채는 한국이 원조다. 육당 최남선은 ‘고사통’에서 “중국은 원래 단선뿐인데, 북송 때 고려에서 접선이 들어와 접는 부채가 일반화됐다”고 했다. 여기에 그림이나 글씨를 넣은 게 ‘서화선’이다. 이는 팔랑팔랑 부치는 게 아니다. 감상하거나 뜻을 새기며 더위를 잊는 것이다. 그런데 요즘은 부채를 구경하기가 어렵다. 선풍기도 제치고 에어컨이다. 너무 틀어 냉방병이 만연한다. 지구가 뜨거워진 탓인지, 폭염주의보도 매년 빨리 찾아온다.
환경 오염에 따른 재앙이 올 것이라는 사실은 누구도 알고 있다. 하지만 누구나 입으로 걱정만 할 뿐 손으로 실천을 하지 않는다. 그러나 깨끗한 산하, 푸른 지구를 살리려면 내가 먼저 실천해야 한다. 지구를 살리는 것은 거대 담론이 아니다. 작은 실천이다. 우리보다 훨씬 슬기로울 후손들에게 미련하고도 몹쓸 짓은 하지 말아야 할 것이다. 마구 버리고 함부로 파헤치지 말아야 한다.
아무리 폭염이라도 나라만 어수선하지 않으면 좀 견딜 수 있겠다. 불볕 더위에 심화(心火)까지 더하면 어쩌란 말인가.[관리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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