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황허 강 상류의 직은 고을인 하진은 ‘용문’이라고도 불렸다. 그 주변은 물쌀이 너무 강해 배가 다닐 수 없었고 물고기도 급류를 거슬러 올라가지 못했다. 그 급류를 타고 올라간 물고기만이 용이 될 수 있었다. 입신출세를 뜻하는 등용문에 얽힌 고사다. 현대판 등용문이 있다면 바로 행정고시다. 그 출세의 급류를 올라타기 위해 오늘도 수많은 젊은이들이 젊음의 환락을 뒤로 하고 고시 공부에 매달리고 있다. 고시 합격 그 자체로 기득권 세력에 편입되기 때문이다.
정부가 내년부터 5급 사무관을 선발하는 행정고시를 없애고 ‘5급 공채’를 도입한다. 내년 30%를 시작으로 2015년까지 5급 신규 채용자의 절반을 민간 전문가로 채울 계획이다. 1949년 행정, 기술, 사법과를 포함한 고등고시가 시작되고 1963년 행정고시가 분리된 이래 61년 만에 고위 공무원 채용방식이 크게 바뀌는 것이다. 고시제도가 개편됨에 따라 공직사회는 물론 고시생과 학원가까지 일대 변화를 맞게 됐다. 각 분야의 전문가들에게도 문호가 개방될 것으로 보인다.
과거제도가 권문세가 자제들의 관직 독점을 막고 각지에서 인재를 골고루 선발하기 위해 도입된 것처럼 행정고시도 공정하고 객관적인 등용의 관문임에 틀림없다. 지금도 지방에서는 지역 출신이 행정고시에 합격하면 플래카드를 내걸고 동네잔치를 벌인다. 이렇게 공직에 진출한 유능한 테크노크라트들이 우리나라 경제발전의 견인차 역할을 했던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고위공무원을 단 한 번의 시험으로 채용하는 나라는 한국 일본 대만 이외에는 찾기 어렵다. 프랑스는 공직자 선발방식을 바꾸기 위해 고위직의 산실이었던 국립행정학교의 개혁 방안을 마련 중이다.
우리나라는 고위공무원단의 70.6%가 고시 출신으로 구성이 다양하지 못하다. 고시 출신들은 전문지식과 경험이 부족하고 경쟁 풍토에 익숙하지 않아 새로운 행정수요에 기민하게 대처하지 못한다는 시각도 있다. 하지만 ‘5급 공채’가 결국은 법학전문대학원(로스쿨) 졸업생의 취업통로가 될 것이라는 비판은 일리가 있다. 그동안 행정고시를 준비한 수험생들은 갑작스러운 제도 변경에 강한 불만을 표시한다.
그러나 간부 공무원 충원 방식을 다양화하는 방향은 환영할 만하다. 국민들이 요구하는 공공서비스는 과거와 크게 달라졌고 건강 노후복지·환경·레저 분야 등 새로운 수요가 급증하고 있기 때문이다. 현재의 실·국장급 위주 개방형 직위 182개 자리도 말만 개방형이지 실제로는 공무원끼리 돌아가며 차지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A부처와 B부처가 한 자리씩 개방직을 맞교환하는 식으로 변칙 운용한 사례도 적지 않다.
선발·충원보다 더 중요한 것이 선발 후 인사다. 간부 공무원 중에서도 도저히 구제불능이거나 전문성이 없는 것으로 판명된 사람은 퇴출시킬 수 있는 '출구제도'가 있어야 한다. 공무원에게는 특별한 신분보장이 약속되어 있지만, 중앙부처 간부 가운데 최하위 몇%를 퇴출시킨다고 해서 공무원 사회의 정치 중립이 흔들린다고 염려할 필요는 없다.
공직 사회가 창의력·열정·잠재력을 발휘하게 하려면 무엇보다 학연·지연을 따지는 연줄 인사가 사라져야 한다. ‘민간인 사찰’ 사건으로 구속된 총리실 이인규 전 공직윤리지원관은 노동부 국장이었다가 출신지 덕분에 하루아침에 공무원 사회의 실세가 됐다. 자기 사람을 요직에 앉히는 ‘끼리끼리 인사’가 만연하면 아무리 전문가 채용제도를 도입하고 개방직을 늘려도 공무원 조직의 경쟁력은 제자리에서 맴돌 수밖에 없다. 전문성 있는 인재들이 공정한 평가기준에 따라 보직을 받고, 성과에 따라 승진할 수 있는 총체적인 인사제도 개혁이 있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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