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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제위기의 한파에도 봄은 온다 |
2009년02월17일(Tue) |
| 나경택<수석논설위원, 칭찬합시다중앙회회장> |
겨울의 깊은 곳을 건너왔다. 입춘, 바람은 아직 차지만 봄으로 가는 첫 이정표가 가가왔다. 이제 동풍이 불어 언 땅을 녹이면, 잠자던 벌레들이 꼼지락거리고 얼음 밑에선 물고기가 돌아다닐 것이다. 지구는 태양쪽으로 살짝 기울고, 봄은 겨울을 슬쩍 밀어냈다. 알몸으로 겨울을 난 나무들은 스스로 대견한 듯 팔 벌려 숨을 고르고 있다.
빈 손으로 겨울을 난 시인의 감상이다. ‘바람 잔 날/ 무료히 양지쪽에 나앉아서/ 한 방울/ 두 방울/ 슬레이트 지붕을 타고 녹아 내리는/ 추녀 물을 세어본다/ 한 방울/ 또 한 방울/ 천원짜리 한 장 없이/ 용케도 겨울을 보냈구나/ 흘러가는 물방울에/ 봄이 잦아들었다’(박형진·입춘단상). 천원짜리 한 장 없이 한 세월을 견딘 이들에게 입춘의 햇살은 용하기만 하다. 한 방울, 두 방울 아무리 세어도 막막한 삶일지라도 별은 어김없이 찾아든다.
돌아보면 혹독한 겨울이었다. 세파는 매웠고 삶은 추웠다. 몸은 나무처럼 헐벗었고, 마음은 빈 가지처럼 시렸다. ‘논둑에 사는 / 미루나무/ 이십 년 모은 재산/ 까치둥지 하나/ 반짝이던 잎새/ 다 어디 가고/ 긴긴 겨울에/ 빈 하늘뿐.’ ‘미루나무’라는 동시다. 달랑 까치둥지 하나에 의지해, 허공에 매달린 채로 우리는 한 계절을 건너왔다.
그러나 동심여선이라고 했던가. 어린이의 맑은 눈으로 돌아보니 나무는 맨몸이 아니었다. 잎새를 떨궈 앙상한 가슴 은 대신 하늘을 품고 있었다. 빈 가지엔 밤이면 별이 돋아나고 있었다. 신경림 시인의 ‘나목’이다. ‘나무들이 실오라기 하 나 걸치지 않고 서서/ 하늘을 향해 길게 팔을 뻗고 있다/ 밤이면 메마른 손끝에 아름다운 별빛을 받아/ 드러낸 몸통에서 흙 속에 박은 뿌리까지/ 그것으로 말끔히 씻어내려는 것이겠지.’
나무는 알몸으로 서 있어도 더이상 외롭지 않다. ‘터진 살갗에 새겨진 고달픈 삶’도 ‘뒤틀린 허리에 배인 구질구질한 나날’도 부끄럽지가 않다. ‘온몸을 떨며 깊은 울음을 터뜨릴 때/ 멀리서 같이 우는 사람’과 하늘과 별이 있기 때문이다.
절기는 입춘이지만 경제위기 속의 우리네 삶은 이제 막 겨울 문턱에 들어섰다. 얼마나 많은 이들이 천원짜리 한 장 없이 맨몸으로 찬바람을 맞을 것인가!
혹독한 경제위기가 빈곤층을 후려치고 있다. 정부에서 생계비를 지원받는 기초생활보장 수급자 154만명은 그래도 나은 편이다. 부모와 자녀가 돈을 벌고 있다는 이유로, 자동차나 집이 있다는 이유로 정부 지원을 받을 수 없는 사각지대 빈곤층이 250만명은 된다고 한다. 여기에다 매일같이 부도기업들이 새로 쏟아내는 실업자, 장사가 안 돼 문을 닫는 자영업자들, 사채를 썼다가 신용불량자로 추락한 사람들이 신빈곤층으로 전락하고 있다. 얼마 전 IMF는 올해 성장률을 -4%로 전망했다. 이렇게 되면 실직자는 수십만 명 더 생겨나게 된다.
서울에서만 한 달 평균 3000명씩 개인파산을 신청하고 있다. 이런 사람들은 지금 막 빈곤층 대열에 합류했기 때문에 기존 사회안전망에서 제외돼 있다.
129 콜센터가 지난달 시·군·구에 긴급지원을 요청한 사람 1541명 가운데서도 40.9%, 630명은 부적격 판정을 받았다. 직장을 잃으면 6개월간 실업급여에서 평균임금의 절반을 받는다. 그러나 비정규직은 고용보험에 가입한 일이 없어 그 혜택을 받을 수가 없다.
이런 처지의 사람들은 식구 중에 아픈 사람이라도 생기거나 당장 생계가 어렵다든지 하면 있는 자산을 팔아치워야 한다. 그렇게 되면 일시적 빈곤층이 영구 빈곤층으로 곤두박질친다. 한번 빠지면 헤어날 수 없는 게 빈곤의 늪이다. 자활에 성공하는 빈곤층은 10%밖에 안 된다. 그러나 허공에 매달린 삶일지라도 별을 품고 있는 한 봄은 온다! 독자여러분과 유지나의 ‘저하늘에 별을 찾아’ 노래나 듣고 싶구나![관리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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