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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입법전쟁, 더 이상 말라 |
2008년12월30일(Tue) |
| 이준구<주필, 시인> |
최근 국회는 전쟁(戰爭) 상태였다. 18일 한나라당이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비준동의안을 외교통상통일위원회에서 단독처리 상정하는 과정에서 책상과 의자 바리케이트, 해머와 전기톱, 소방호스와 소화기가 등장했다. 국회의원, 당직자, 국회 경위 등 수백 명이 뒤엉켜 회의장을 부수고 치고받고 7시간 이상을 아수라장으로 만들었다.
사실 이와 같은 파행 국회를 한두 번 보는 것은 아니지만 국민과 세계의 눈 따위는 안중에도 없는 행태에 분노가 치솟는다.
국민은 경제불황의 늪에 빠져 살아 남기 위해 몸부림치고 있다. 고용사정의 악화로 사실상 백수상태인 실직자가 275만 4천명이나 된다. 그 가족들의 생계가 우려스럽다.
이 어려운 경제난 해소를 위해 솔선해야 할 국회의 처사는 한마디로 반국민적(反國民的)이라 지탄받아 마땅하다.
여야 대치속에 지난 12월 13일 새해 예산안은 민주당 불참속에 통과되었다. 민주당은 한나라당의 예산안 단독 처리와 국회의장의 직권상정에 대한 항의로 상임위 활동을 거부하면서 국회운영을 마비시키고 있다.
민주화 20년이 지나고 2번의 정권교체를 경험하면서 우리 정치도 이제 민주주의의 뿌리가 내렸다고 본다. 과거 오랜 군부독재 시절에 불가항력적인 몸싸움과 점거농성 등은 그래도 명분이 있었다.
권위주의 독재세력이 압도적인 우세를 유지하는 구조에서 소수 민주세력은 국민적 여론의 지지와 정당성을 가지고 투쟁했다. 그런데 21세기 선진화의 문턱에서, 더욱이 세계금융위기의 절박한 상황에서 우리 국회는 구태의연한 저질적 정치행태를 반복하고 있다.
본래 어느 국가든 국가정책은 진보와 보수의 연속선상에서 진동하게 돼 있다. 민주적인 국가는 국민의 선택에 의해서, 독재국가는 개인 또는 소
수세력에 의해서 정책방향이 결정된다.
따라서 민주주의는 정책 내용보다도 정책이 결정돼 가는 과정을 중시하며 국민주권, 정치평등, 국민협의, 다수지배의 원칙을 기본원리로 한다.
여기에 성숙된 민주주의 또는 민주주의의 심화를 위해서는 관용(寬容)의 원칙이 첨가돼야 한다. 반대쪽 존재의 인정과 수수자에 대한 배려가 있어야 한다. 이것이 관용이 있는 데모크라시(democracy)이다.
한나라당의 무리한 단독처리 상정은 관용이 결여된 것이다. 내년도 예산안의 헌법처리 시한을 넘겨 강행처리한 지 며칠 지나지도 않았다. 또다시 야당 참여를 물리적으로 배제한 채 한미FTA 비준동의안을 전격 처리했다.
이것은 전술적 과오가 아니라, 약육강식(弱肉强食)의 비인도적(非人道的) 발상이다. 중요한 법안일수록 적절한 토의와 민주적 과정을 거쳐야 하기 때문이다. 다소 지연되더라도 그 결과는 더욱 정통성을 가져야 한다. 패자를 완패시킨다면 그 패자는 죽을 때까지 싸울 것이다.
민주주의는 다양성의 상징이다. 따라서 소수의 의견, 주장도 당연한 권리로 반영돼야 한다.
야당의 몫은 정부·여당을 견제하면서 자당(自當)을 지지하는 국민의 의사를 국정에 반영할 책무가 있다. 여당과 부딪치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수순일지 모른다.
지금 이 시점 국민의 눈에는 국회도, 집권당이나 야당 어느 누구도 없다. 그렇게도 ‘언제나 나만 옳다’던 그 누구의 변명도 들리지 않는다.
10년 전 외환위기의 악몽이 너울거리고 민생이 도탄에 빠진 이 시점에서 사람들은 국회와 정부가 무언가 신속하고 활발하게 움직여서 대책을 만들고 문제를 해결해 나가는 모습을 기대하고 있다. 이를테면 국민이 뽑은 ‘정부’가 맡은 바 제 임무를 다하기를 바라고 있다.
하지만 이게 뭔가. 수치스럽고 절망적이다. 국민의 상처와 시름은 오히려 더 깊어졌다. 정작 국회야말로 대한민국의 국가 경쟁력을 깎아 먹는 망국적 존재가 되지 않았는가, 할 말이 있는가. 지금 이 시점에서 필요한 건 무엇인가? 단 하나가 있다. 여야 모두가 일체의 공격, 비방 행동을 중지하고 국민 앞에 석고대죄(席藁待罪)해야 한다.
앞으로 국회에서 더 이상 폭력을 쓰지 않겠다고 다짐하고, 이를 어길 경우 국회의원 자리를 내놓겠다는 비장한 결의가 필요하다. 입법권자를 자부하는 국회의원들의 법의식이 심각한 수준에 이르렀기 때문이다.
국회 당국은 ‘국회법’ 연구에 심혈을 기울여야 할 것이다. 최악의 경우 국회법을 제대로 준용하는 것 밖에 없는 까닭이다.[관리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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