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긴급조치 무죄판결 양영태 변호사>
"당시 판사들 죄인으로 몰아붙이는 것은 곤란”
"'악법도 법이다' 는 논리로 각자 소신껏 판결”
“유신시대에 법관 신분을 유지하는 것 자체가 고역이었습니다”
31일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가 긴급조치 위반사건에 관여한 판사들의 실명을 공개한 가운데 무죄판결을 선고했던 당시 광주고법 판사가 당시 상황을 털어놓았다.
유신시절 광주고법 판사였던 양영태 변호사(67·사진)는 “나도 역사의 죄인 중 한 명이지만 긴급조치 사건 판결에 관련된 판사 모두를 죄인으로 몰아붙이는 것은 곤란하다”며 “명단이 공개되더라도 판결내용을 보고 옳고 그름을 판단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양 변호사는 “당시 판사들은 암울한 시대의 법복을 입고 있는 것 자체가 큰 고역이었다”며 “법관들은 ‘악법도 법이다’는 논리로 각자의 소신대로 판결에 임했다”고 회고했다.
특히 양 변호사는 “분명한 것은 시류에 편승하기 위해 악법에 동조하고 무리한 판결을 낸 법관들이 있었다는 것이다”며 “이들이 전체 법관과 판결에 대한 불신을 가중시켰다”고 말했다.
긴급조치 위반 사건 중 양 변호사가 과감히 무죄 판결을 내린 것은 두 번. 그중 하나는 1975년 농민 김모씨의 사건이다.
당시 농민 김씨는 마을 상가에서 주민들과 대화하던 도중 “공산주의 정치도 사람이 하니까 무조건 죽이는 건 아니다. 박정희 대통령이 무력으로 집권했다”는 발언 때문에 반공법과 긴급조치 9호 위반 혐의로 기소 돼 1심에서 유죄 선고를 받았다.
하지만 항소심에서 주심을 맡은 양 변호사는 이 사건에 대해 무죄를 선고했다. 김씨의 말을 들었다는 증언자가 3~4명인데 반해 듣지 않았다는 증언자가 7~8명에 달한데다 이들의 진술이 더 객관적이었기 때문이다. 특히 김씨의 말을 들었다는 증언자들의 진술에 개인적인 감정이 포함돼 있다는 이유도 무죄 선고에 큰 작용을 했다.
또 하나는 군대에 있는 조카에게 ‘박정희는 독재자다’라는 내용이 담긴 편지를 보낸 작은 아버지가 군 검열에 적발돼 긴급조치 위반으로 입건된 사건.
이도 무죄를 선고한 양 변호사는 ‘공공연히 허위사실을 유포할 경우 긴급조치 위반에 해당한다’는 법 논리를 정면으로 반박했다.
그는 편지의 경우 개인적인 것인 데다 군이 편지를 검열하는 것 자체가 불법일 수 있어 공공연히 유포한 것이 아니고, 박정희 정권의 독재 또한 사실이기 때문에 허위사실이 아니다고 판결했다.
하지만 돌아온 대가는 주위의 싸늘한 시선과 정보당국의 감시였다. 이후 양 변호사는 진급이 2~3년 늦춰졌고 결국 윗선의 사퇴 종용으로 스스로 법복을 벗었다.
양 변호사는 “무죄 판결 뒤 청와대에서 감사와 내려와 조사했다는 나석호 국회의원의 말을 들었다”며 “법조계 내에서는 ‘무죄판사’라는 별명까지 따라 붙었다”고 말했다.
그는 또 “하루 20~30건의 판결 중 긴급조치 위반 사건이 2~3건씩 있었다”며 “이들 사건에 대해서도 절대 3년 이상은 선고하지 않았으나 그 형을 내린 것이 지금도 가슴을 아프게 한다”고 고백했다.
전남 나주에서 초등학교를 나온 뒤 광주 서중·일고를 졸업하고 서울대 법대 4학년에 고시에 합격한 양 변호사는 ‘대법관의 꿈’을 접고 1984년 광주지법 부장판사를 끝으로 법관 생활을 마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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