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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매미들이 노는 정자나무 |
2008년08월28일(Thu) |
| 박상주<편집국장/시인> |
여기 저기 시골을 지나다 보면 동네 앞에는 여지없이 커다란 느티나무들이 있다. 동네 사람들은 이 나무를 정자나무라고도 한다. 사람들이 이 나무 아래 정자를 짓기도 했기 때문이다.
동네 앞에 있는 정자나무는 그 동네의 앞을 지켜주고 동네 뒤에 있는 느티나무는 동네의 뒤를 지켜준다. 동네 앞 들 가운데에도 느티나무가 있는 동네가 있는데, 이 나무는 들을 지켜주는 나무다. 또한 옆 동네의 경계나 산마루에도 느티나무를 심어 가꾸기도 했다.
동네 앞 허전한 곳에 이 나무를 심어 사람들의 마음을 잡아주기도 했고, 동네 조그마한 냇가에 심어 강물에서 노는 아이들을 지켜준다. 작고 조촐하고 가난한 동네의 뒤나 앞에 심어진 느티나무는 수령이 오래가고 또 모양이 풍성해 보여서 봄여름 가을 겨울 그 동네를 풍요롭게 가꾸어 주기도 한다.
정자나무라고 하고 당산나무라고도 하는 이 나무의 종류는 대개 느티나무, 팽나무 등이다.
우리 동네에는 한 그루의 느티나무가 있는데 동네 뒤 언덕에 심어 가꾼 이 느티나무를 정자나무라고 부른다. 이 정자나무는 한 150년이 넘었다. 여름이 되면 동네 모든 남자가 점심을 먹고 다 이 나무 아래로 모여들었다.
잎이 무성한 이 나무는 그늘이 넓고 짙었다. 아무리 더운 날이라도 이 나무 아래 들면 바람이 일고 땀이 개었다. 나무 아래에는 넓적한 돌들이 여기저기 놓여 있어서 사람들이 편히 누워 낮잠을 잘 수 있었다.
잠을 자지 않는 사람들은 짚신을 삼기도 했고, 장기를 두기도 했고, 아이들은 모래를 가지고 놀기도 했고, 고누를 두기도 했고, 또 어떤 날은 동네의 일로 대판 싸움이 일어나기도 했다.
이 나무 아래에서는 동네의 모든 크고 작은 애경사 소식이 들리다가 오랜 시간 동안 동네 사람들 입줄에 오르내린 후 이 나무 아래에서 또 해결이 되었다.
비유하기가 좀 ‘거석’ 하지만 이 나무는 동네의 ‘국회의사당’이었다. 우리 동네의 모든 역사를, 우리 동네 사람들의 모든 비리를 다 알고 있을 이 나무 아래에서는 그 어떤 거짓말도 통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이 나무가 동네 사람들의 모든 일을 다 알고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현실은 정자나무에서 우는 시끄러운 매미 소리만 들릴 뿐이다. 그 옛날 매미소리 들으며 한숨씩 주무셨던 어르신네들은 자연으로 돌아가고 그 자리는 썰렁하기만 할 뿐이다.
그 옛날 동네 한 어른의 노래소리가 들려온다. 그 정자나무 숲 아래서 단조롭고 지루했던 내가 어느 날 시조를 듣고 있다가 참을 수가 없어서 “그런데요, 할아버지 왜 만날 청산만 하세요?” 그랬더니, 그 어른은 나를 돌아보지도 않고 “시끄럽다. 이놈아!” 하시고 또 그 “청산이이아아아으으으” 였다. 눈이 맑으신 분이셨다.
홀로 깨어 앉아 그렇게 청산을 찾다가 그 어른은 햇살 속으로 가만가만 걸어가 강변에서 소똥을 주워 바지기 가득 담아 짊어지고 집으로 가셨다. 그 시끄럽고 무덥던 여름날의 그 정자나무 밑이 텅텅 비어가면서 농촌 공동체는 사라졌다. 매미들만 무성한 정자 나뭇잎 속에서 귀가 따갑게 울고 있다.[관리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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