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대 국회가 개원 정상화됐다. 지난 5월 30일 임기가 시작된지 82일 만이다. 1992년 14대 국회 원구성이 125일 지연된 이래 가장 지독한 파행이었다.
지금 한국사회는 각계 각층이 살아가려고 몸부림치고 있는게 현실이다. 날로 험악해지는 국제경제 환경속에서 기업은 사투를 벌이고, 대학생들은 생존의 일자리를 얻으러 도서관에 불을 밝히고, 젊은 세대는 피와 땀과 눈물로 올림픽 메달을 만들어냈다.
가장 특혜를 누리는 집단인 국회는 이런 국가적 상황에서 석달 가까이 임무를 내팽개쳤다. 그동안 계류된 법안으로 인해 고통받는 사람은 얼마며 전진을 할 수 없었던 국사 등을 돈으로 환산하면 얼마일까. 과연 필요한 것인가.
이번 국회 파행의 가장 심각한 폐해는 법의 실종이다. 국회법에는 늦어도 임기 개시 10일 이내에 상임위를 구성하도록 되어 있다. 국회의원이 됐으면 빨리 상임위를 구성해 법안을 심의하고 민생을 다루라는 뜻이다.
국회는 예산안 처리 법정기한을 어기는 일도 밥 먹듯 해왔는데 이젠 국회 구성에서까지 법을 난도질하고 있다. 법을 만드는 입법부가 수시로 법을 어기는 것은 국가 기강의 대들보를 흔드는 일이다. 국회 공전은 국민의 실생활로 봐서도 용서하기 쉽지 않은 행태다.
18대 국회에 계류 중인 법안은 588건이다. 세금 관련 33건을 포함해 민생과 관련이 있는 법안만 90여 건이고 추가경정예산안도 있다.
국회는 노조의 명분 없는 파업에 대해선 핏발을 세우며 규탄하곤 했으며 무노동무임금을 외쳤다. 그랬던 국회가 자기 일에는 이유 없는 태업을 일삼고 있다. 국회의원이 국회를 여는 것은 학생이 학교에 가는 것과 같다. 무슨 다른 명분과 이유가 필요하단 말인가. 국회가 이토록 흐느적거린 데에는 제1야당 민주당의 책임이 크다.
민주당 의원들은 쇠고기 촛불정국때 여의도 국회 대신 시청 앞 집회장을 택했다. 일부 의원은 불법·폭력 시위현장의 맨 앞줄에 서기도 했다. 민주당은 가장 최근엔 정부가 미국과 체결한 쇠고기 협상을 국내법으로 통제하려는 무리한 주장으로 국회 문을 잠궜다. 촛불로 정권이 흔들리자 쇠고기를 이용해 계속해서 낙과를 챙기겠다는 심보였다.
그러나 민심은 속지 않는다. 당의 지지율이 20% 밑에서 허우적거리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한나라당의 책임도 적지 않다. 170석이 넘는 과반수 여당은 주도적으로 국회를 정상화할 책임이 있다.
한나라당은 촛불시위때도 미국 쇠고기 반대론자들에게 질질 끌려다니더니 국회 정상화 문제에서도 협상과 타협이란 미명 아래 국회 공전에 동조했다.
협상은 중요하고 필요한 것이다. 국회가 교섭단체 간의 협의로 운영되어야 한다는 것은 국회의 정신이자 관행이다. 그러나 이는 어디까지나 합리적인 주장과 조건 내에서 이루어지는 것이다. 제1야당이 법을 정략적으로 이용하고 꼼수와 싸움질이 체질화돼 있다면 국회가 정상 가동하더라도 국리민복에 기여하는 생산적이고 건전한 정치를 기대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국회 공전으로 국정 운영과 국민 생활에 필요한 법안은 한건도 처리되지 못했다. 그런데도 의원들은 세비를 포함해 월 4천300여만원 씩을 꼬박꼬박 챙겼다. 모두가 국민이 치르는 비용이다. 국민의 고통과 절망의 목소리를 외면한채 자신들의 낡은 이념에 충실했던 기왕의 정치활동을 벗어던지고 국민과 함께 가는 완전히 환골탈태한 모습이 나와야 국민들은 비로소 기대를 하게 될 것이다. 국회는 몸으로 부딪치는 곳이 아니라 말로써 대화하고 타협하는 장으로 거듭나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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