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을 사람이라고 생각해보지 않았다. 실수란 있을 수 없고, 항상 옳은 판단만 해야 하며 국민의 고충을 모두 해결해주는 슈퍼맨이야만 했다. 그런 완벽한 조건을 갖춰야 했기 때문에 가까이하기엔 너무 먼 당신이랄까.
하지만 내 생각에 변화가 오는 시기가 있었으니, 촉발은 故노무현 前대통령의 감귤사건이었다. 행사장에서 받은 감귤을 아무런 정치적 액션 없이 자연스레 그의 양복 호주머니로 들어갔던 사건. 당시 젊은 사람들 사이에서 큰 파장을 불러일으켰다. 우리 같은 사람의 모습이었다. 기존의 대통령에 대한 생각이 무너지는 순간이었다.
“대통령은 저러면 안 되는 거잖아. 권위 없이….”라는 실망감에 휩싸였다가 그런 생각이 얼마나 부질없는 짓인지 노무현 대통령은 진솔한 행동으로 때마다 일러주었다. 대통령도 사람이라는 것을 그때 처음 알았다.
문재인 후보는 노前대통령의 이미지를 물려받은 듯 사람냄새가 나고 믿음직한 이미지를 잘 구축해 놓았다. 그래서인지 부담이 없고 친근하다. 그런데 그게 끝이었다. 인간미만 물려받았지 쇄신의 목소리를 작았다. 안하는 건지 못하는 건지 공동정부론이라는 청와대 권력분산만 내놓을 뿐 정작 쇄신을 해야 할 기존 정치권의 시스템에 이렇다 할 방안을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 친근하고 소탈한 매력만으로 대통령이 될 수 있는 건 아니지 않는가. 그런 소탈함뿐이라면 우리 이웃집 아저씨가 더 소탈하다. 우리가 원하는 대통령은 사람냄새가 나는 슈퍼맨이지 사람냄새만 나는 옆집 아저씨가 아니다.
초반 문재인 후보와 안철수 후보의 단일화 이야기는 신선했다. 그들의 연합은 정치권 혁신이 불러일으킬 거라는 기대감에 부풀게 했고, 더불어 고속성장에 따른 한국사회의 불안감을 안정화 시켜 줄 것이라는 희망마저 생기게 하였다. 하지만 진화되지 못한 단일화 요구에 보는 이들은 시간이 지날수록 지쳐만 간다.
아직까지도 안철수 후보와의 단일화에 목을 매며 정권교체를 외치는 모습이 이제는 처절해 보이기까지 하다. 그러면서 주장하기를 새누리당이 아닌 민주당이 답이라는 것이다. 그 생각이 지속된다면 쇄신도 단일화도 물 건너갔다. 국민들이 원하는 것은 다람쥐 쳇바퀴처럼 돌고 도는 정권교체가 아니라 새로운 정치이다. 새로운 정치 시스템이 형성되어 본연의 임무를 다 할 수 있는 그런 정치 풍토를 원하고 있다.
줄여 말해 단일화가 아니라 민주당 쇄신이다. 그리고 안철수 식 파격행보이다. 안철수 후보는 대권후보 요청을 이끌어 냈고, 기존 정치 세력에 정면으로 도전장을 냈으며, 야권 단일화에 적극적으로 쇄신의 방법을 조건으로 내거는 한편, 지금까지의 정치 시스템을 통으로 바꾸려는 노력을 서슴치 않고 있다. 빚질 것도 빚진 것도 없기에 가능한 일이었을 것이다.
문 후보의 지금까지의 행보가 진심이었다면 더욱 진화된 단일화를 구상해야 한다. 민주당 쇄신의 구체적 방안을 마련하고 당 차원에서 적극적 협조를 이끌어 내야 한다. 야권의 표가 안철수 후보와 나뉘는 것은 민주당 쇄신을 바라는 국민의 마음 때문이지 쇄신이 전제되지 않은 단일화만 외치는 것은 그의 지지자들을 지치게 할뿐이다. 더군다나 이 상태의 단일화 요구는 아이러니하게도 단일화가 되지 않더라도 안철수 후보의 책임총리 자리는 보장이 되어있다고 알려주는 꼴만 될 뿐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쇄신의 시작은 본인에서부터 정당에 이르기까지이다. 그러므로 후보 혼자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당의 적극적 협력을 이끌어내야 마땅하나 문재인 후보는 기존 당의 옷만 입고 홀로 고군분투하고 있다. 무소속만도 못하다. 최소한 민주당 내부부터 통합하고 쇄신에 적극적으로 임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차라리 문재인 후보가 무소속 후보였다면 파격행보가 가능하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마저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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