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엿사나 이여도사나 이엿사나 이여도사나/ 우리 배는 잘도 간다/ 솔솔 가는 건 솔남(소나무)의 배여/ 잘잘 가는 건 잡남(잣나무)의 배여/ 어서 가자 어서 어서…’(제주 민요 ‘이어도 타령’) 제주사람들에게 이어도는 피안의 섬이었다.
어부들이 바다에서 돌아오지 못하면 이어도로 갔다고 믿었다. ‘이어도 타령’에도 이별 없는 이상향에 대한 해녀들의 애틋한 염원이 담겨 있다. 언제 죽을지 모른채 거친 바다로 나설 때마다 이어도를 떠올리며 위로를 받았던 것이다.
이어도가 세상에 알려진 건 1900년 6월5일이다. 일본을 거쳐 상하이로 가던 영국 기선 소코트라호가 암초와 부딪친 게 계기다. 측량선을 보내 암초를 확인한 영국은 기선 이름을 따 ‘소코트라 암초’로 명명한 후 국제해도에 올렸다. 위치는 마라도 서남쪽 149㎞ 지점이 다. 엄밀히 따지면 섬은 아니고 수중바위다. 가장 얕은 곳도 4.6ｍ쯤 잠겨 있다. 큰 파도가 칠 때만 잠깐씩 모습을 드러내서인지 ‘파랑도’로도 불린다. 평균 수심 50m에 남북 1천800m, 동서 1천400m 정도의 크기다.
우리가 친숙해 진 건 이청준의 소설 ‘이어도’(1974년)를 통해서다. ‘긴긴 세월 동안 섬은 늘 거기 있어 왔다. 그러나 섬을 본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섬을 본 사람은 모두가 섬으로 가버렸기 때문이다’로 시작되는 소설은 해군장교가 이어도를 찾던 중 실종된 기자를 추적하는 내용이다. 우리 정부는 1951년 이어도 탐사를 한 다음 ‘대한민국 영토, 이어도’라 새긴 동판을 가라앉혔다. 1970년엔 이어도 해역을 제7광구로 지정한 해저광물자원개발법을 제정했다. 연면적 1천188㎡(360평)의 해양기지를 건설한 2003년 이후엔 필요할 때마다 전문가들이 머물며 연구활동을 벌이고 있다. 하지만 배타적경제수역(EEZ) 획정 문제를 놓고 중국과 갈등을 빚어 왔다.
중국이 이번엔 이어도를 무인항공기 감시 대상에 포함시켰다. 2015년까지 연해 각 성에 원격감시기지를 건설하고, 관할 해역에 대한 무인기 감시를 전면 확대할 계획이라고 한다. 이어도에 대한 영유권 주장을 강화할 것이라는 예고다.
이어도는 한·중 배타적경제수역이 겹치는 곳에 있지만 우리나라에 훨씬 가깝다. 중국의 가장 가까운 무인도 퉁다오에서는 247㎞, 유인도 서산다오에선 287㎞나 된다. 국제관례대로 겹치는 수역의 중간을 택해도 우리 배타적경제수역에 속한다. 민요, 전설과 함께 여러 문학작품을 통해서도 우리 의식 속에 확고하게 자리잡고 있다. 중국의 이어도 관할권 주장은 급작스레 커진 덩치만 믿고 이웃 해양주권을 탐하는 만행이 아닐 수 없다.
이어도가 포함된 제주도 남방 해역은 천연가스와 원유의 98.3%를 수송하는 핵심 무역항로다. 중국은 이곳에서 조업하는 중국 어선들을 보호한다는 명목을 내세우면서도 한중 EEZ 획정을 위한 협상을 16년째 기피하고 있다. 유사시 한국 함정이 이어도까지 출동하려면 부산에선 23시간이나 걸리지만 제주에선 8시간이면 가능하다.
노무현 정부는 해군 전력 강화를 핵심사업으로 삼아 2007년 제주 해군기지 건설을 국책사업으로 결정했다. 노 전 대통령은 2007년 6월 제주도 평화포럼에서 “제주를 지키기 위해서라도 해군이 필요하며 제주 해군기지는 예방적 군사기지”라고 강조한 바 있다.
한국의 차기 대통령의 최대·최초의 과업은 영토·영해 문제를 공격적으로 풀어가려는 중·일의 차기 지도부를 상대하는 일이 될 가능성이 크다. 이런 상황일수록 국가 이익을 보호하고 국민의 자존을 지켜낼 국가 최고 지도자의 안보·외교 역량이 더욱 중요하다. 전국의 시장과 골목을 누비며 표가 될 인기 정책 상품을 파는 데만 골몰하고 있는 우리의 대선 후보들에게 이 어려운 과업을 믿고 맡겨도 될 것인지 국민의 걱정은 깊어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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